방송이야기

쇼와 대공황?? 2

이궁이 2022. 1. 16.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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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금본위제는 19세기 말에 확립되었다고 해요.

금본위제를 처음으로 시도한것은 1871년이었습니다.

이때 화폐단위를 일본 엔으로 결정하고 금본위제를 시도했었습니다.

그러나 경제기반이 약했기 때문에 금화의 유출이 계속되어서 은본위제로 전환하였다고 하네요.

그런 니뽄이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후인 1897년부터 금본위제를 본격적으로 채택했습니다.

이때 환율을 화폐법으로 고정시켰는데, 1달러당 2엔 정도의 비율로 해서 고정환율제를 실시했습니다. ( 구 환율평가,구평가,旧平価)

한편, 제노바 회의에서 열강들은 조속한 시간 안에 금본위제로 복귀해야 한다고 결의를 했는데요.

이때 니뽄은 북양군벌에 지원도 하고 국내의 적극적 재정정책을 위해 금수출 금지 해제를 연기했습니다.

그렇지만 금해금을 연기하는 중에도 무역수지는 적자를 보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환율시세는 정부가 정한 시세와는 완전히 동떨어진것이었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의 일본 정부 자산을 매각하고 금을 매각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으나 이것도 실패합니다.

여기에 관동 대지진은 문제를 더욱 키웠습니다.

관동대지진의 복구와 그에 따른 국내경기부양 및 금융 조치가 필요해지면서 금수출해제는 더욱 멀어지게 되었죠.

그리고 이로 인한 엔화가치의 하락은 과도한 수입을 불러 경제적으로 더욱 혼란스러워졌죠.

그래서! 1차 와카쓰키 레이지로 내각이 금 수출 해제와 긴축정책으로 지진재해 어음을 어떻게 해보려다가 경제공황을 불러왔습니다.

또한 적극재정을 추구한 다나카 기이치 내각이 이 금 수출 해제라는 과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로 전전긍긍해보았지만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 와중에 1928년 프랑스가 금해금을 결정하면서 5대 열강 중 금해금을 하지 않은 국가는 니뽄 밖엔 남지 않게 되었고, 그로 인해 국제적인 압력이 심해졌습니다.

거기다가 1930년 설립을 앞두고 있었던 국제결제은행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출자국이 되는 조건과 국제연맹 재정위원회 구성국 요건에도 금 수출 해제가 들어가게 됩니다.

이로써 금해금은 일본에게는 피할 수 없는 당면과제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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