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야기

친일 민족반역자 김활란

이궁이 2022. 2. 1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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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에서 우리나라 민주화 혁명의 시발점이 되게 한 김주열열사의 죽음에 대한 글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떠오른 인물이 있었습니다.

제가 나온 학교의 설립자인 김활란 입니다.

갑자기 왜 김활란이 떠올랐냐구요?

김활란은 일제시대 대표적인 여성운동가이면서 친일행위자였고 교육자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학생의 신분으로 민주화를 위해 나서서 희생당했고

누군가는 일신의 안일과 영달을 위해 교육자이면서도 서슴없이 민족을 희생시킨 인물의 모습이 묘하게 교차했습니다..

한글로 김활란

영어로 세례명 HELEN

한자로 金活蘭

일본어로 아마기 카쓰란 (창씨개명한 이름)

1899-1970년 생존했습니다.

교육자였습니다. 특히나 우리나라 근현대 여성 교육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유명한 개신교 신자이기도 합니다.

또한 어마무시하게 유명한 친일 반민족 행위자입니다.

다양한 다른 이름이 있는 것에서 알수 있듯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엄청난 공적과 엄청난 과실?로 인해 현재까지도 많은 논란이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녀 김활란의 출신지는 인천입니다. 평안북도 출신 아버지가 제물포 지금의 인천으로 내려와 창고업자로 사업을 했습니다.

그녀의 작품으로는 < 그 빛 속의 작은 생명>이 있습니다.

그녀의 대표관직 또는 경력으로는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장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이화여자대학교 재단이사장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및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

전시내각 공보처장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코리아타임즈사 사장


일제강점기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연합회 재단이사장

대한기독교교육자협회 회장

 

대한 민국 3대 공보처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경력에서 보듯 참으로 다양하면서도 어마무시한 경력을 많이 한 여자입니다.

모친은 기독교 신앙이 깊었습니다.

그런 모친의 영향으로 전 가족이 세례를 받기도 할 정도로 기독교 그중에서도 감리교의 영향이 컸었습니다.

그녀의 종교활동 전체에 감리교는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학교에 입학하면서 헬렌이라는 세례명을 한자식으로 고쳐 ‘활란’이라 했다고 합니다.

 

김활란은 우리나라 여성 교육부분에서 분명히 엄청난 큰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김활란이 살아있던 그 당시 우리나라는 여성의 고등교육 및 유학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이 강했던 시절이고 

 

여성은 그저 가정 내에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시절입니다.

 

또한 여성 운동의 선각자들이 변절과 비참한 말로를 겪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활란은 일생의 말로까지 화려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가 일제시대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미군정 시절에는 미군정의 정책에 충실하게 지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녀의 친일 행동중에는 이화학당 여학생들을 근로정신대 및 위안부로 차출하기 위해 독려문을 발표하고 전국방방곡곡 강연까지 다니며 정신대 및 위안부로 나갈 것을 독려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한 강연과 유려한 문장을 독립과 진정한 자주적인 여성의 독립 및 자립을 위한 글을 썼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인데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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